Silvan's repository
프롤로그 -1- 본문
- ……해낼 수 있어 -
- 지금 뭐라고… -
- 우리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
그는 일순, 멍하니 그의 형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힘이 서린 말투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다.
마치 철부지 아이를 타이르듯이.
- 네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지도 몰라 -
- 선택? -
형제는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있던가? -
"진실은 항상 예기치 않은 시간에 방문한다.
원하지 않던 상황에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은 챕터의 아스타르테스
- ……젠장! -
그는 달리고 있었다. 전장도 아닌, 자신들을 실어 나르는 기함의 내부에서
목적지 없는 질주를 계속하며 하염없이 주변을 헤매는 그 시야는 흔들리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안광을 번득이며 무언가를 쫓는 바이저 너머의 기울어진 시야가
결국 목표를 잡는데 성공했다. 뒤돌아볼 새도 없는 듯, 그저 외마디 고함소리와 함께
그가 힘껏 거대한 체구를 날린 곳은 다름아닌 다 부서져가고 있는 외벽 통풍구였다.
잘못되었다.
무언가가 한참 잘못되어 있었다.
그것이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고 있는 썬더호크로부터 뛰쳐나와
나락처럼 입 벌린 잿빛 하늘에 내던져진 한 채플린의 형상이라면 더더욱.
자철광을 가득 함유한 소행성의 인력은 무시무시했다. 옅은 대기층을 뚫고
거의 지상에 가깝게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중력의 여파로 가속이
붙는 속도는 그의 계산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뒤집힌 시야 너머로
그들이 타고 왔던 썬더호크가 불길에 잠식되다 못해 프레임 자체가 접히며
우그러들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빨리 무슨 수를 쓰지 않는다면,
그 또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칼처럼 솟은 바위뿐인 산악지대가 순식간에 다가든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몸을 틀어 간발의 차로 꿰뚫린 꼬챙이 신세를 피한 그는, 어째서인지
자신 바로 옆을 무서운 기세로 스쳐 지나가는 암벽을 두 발로 힘껏 박찼다.
중심을 잃고 회전하며 튕겨나간 신체가 맞은편 암벽에 부딪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여태껏 꽉 쥐고 있었던 크로지우스 아르카눔을
내려쳐 자신을 반대편으로 다시 떨어뜨려 놓았다.
여기저기 부딪치고 때로는 굴러 떨어지면서, 조금씩이지만 속력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밑으로 떨어지면 여전히 즉사를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지면까지 불과 삼백 미터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제 몸을 튕겨 날리는 것을
그만두고 두 손으로 크로지우스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의 무기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두 절벽 사이에 뒤엉켜 우거진,
빛을 바라 뻗어 오른 두꺼운 무쇠덩굴나무 운집처였다.
- 우아아아아아! -
콰직
어깨에 육중한 충격이 느껴지며 그를 잡아당기는 중력의 손아귀가 잠시
주춤하는 듯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거대한 나무가 통째로 쪼개지는 음향과 함께
그는 다시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따닥이며 간간이 걸려 부서져 나가는 나뭇가지 소리와
그의 펼친 팔 옆으로 빗살처럼 새어나가는 나뭇잎 소리뿐.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붉은 안광의 채플린은 계속해서 기다렸다.
- 150 -
.
.
.
- 70 -
순간, 뻗친 손에 닿은 미묘한 반동을 놓치지 않은 채플린의 크로지우스가
나무 밑동에서부터 자라난 강인한 줄기에 정확히 걸렸다. 비스듬하게 걸쳐진
그것은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고 두꺼운 밑동을 향해 거세게 미끄러져 내리며
미세한 불꽃이 튈 정도의 마찰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마찰이 생사를 갈랐다.
쩌적-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미터 허공 위로부터
커다란 통나무 하나와 함께 탈진한 채플린이 털썩 떨어져 내렸다.
파괴된 썬더호크의 잔해와, 험난한 과정 끝에 결국 메마른 대지 위에 쓰러진 채플린 하나.
이것이 행성 타이모퍼스 미션에 파견된 소규모 챕터, 나이트블리스 분대의 첫 도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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